もっとも差がついているのは日本ですけど、まあ、初代XBoxは日本の家には大きすぎたし、2代目360は死の赤リング(RRoD:Red Ring of Death)がありましたし…。あの問題でMicrosoftは1年の製品保証を3年に延長し、3年以内に赤リングが出たら無償で修理・交換に応じる手厚いサポートで乗り切りましたが、コンソールの23.7%にRRoDが発現し、修理交換費が11億5000万ドル(約1200億円)というとんでもない数字になっていたことが後日、XBox 360発売時のトップのピーター・ムーア氏が明らかにしています。
'역대 제임스 본드 중 가장 본드답다'는 평을 듣고 있는 영국의 원로배우 숀 코너리가 31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향년 90세. BBC 방송, 스카이 뉴스는 이날 그의 가족을 인용해 코너리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다.
BBC 방송에 따르면 그의 아들인 제이슨 코너리는 "바하마에서 세상을 떠날 당시 많은 가족들이 주변에 있었다"며 "우리는 이 일을 견디는 것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를 알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는 슬픈 날"이라며 깊은 상실감을 표했다.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파운틴브리지 지역에서 태어난 코너리는 지난 8월 90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1962년 제작된 첩보 영화 007 시리즈 첫 작품인 '007 살인번호'(원제 Dr. No)에서 최초의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다.
코너리는 007 시리즈 가운데 7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섹시한 남성'이라는 역할 모델을 할리우드 영화계에 만들었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역대 007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너리는 007 시리즈 이외에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년), '장미의 이름'(1986),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2006년 공식 은퇴했다.
그는 수십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과 2개의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상, 3개의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언터처블'에서 연기한 아일랜드 출신 경찰 역할로 198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2000년 스코틀랜드 홀리루드궁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1대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 사진=007museum.com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다닌 것과 달리 코너리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가톨릭 출신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신교를 믿는 청소부였다. 코너리 부친의 가족은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이주했다.
코너리는 13세에 학교를 그만뒀고, 우유 배달과 벽돌공 등을 하다가 해군에 입대했다. 위궤양으로 3년만에 군을 나온 그는 다시 트럭 운전사와 안전요원은 물론 에든버러 미술학교에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축구에 재능이 있었던 코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연기를 시작했다. 1954년 단역으로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1957년 BBC의 '블러드 머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그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든 것은 역시 '007 시리즈'였다. 여러 명의 배우가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제작자의 부인이 코너리의 매력이 섹시한 본드 역할과 어울린다고 추천했고, 결국 배역을 맡게됐다.
원작자인 플레밍은 처음에는 코너리가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첫 작품을 본 뒤로는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그의 나중 소설에서 본드가 스코틀랜드 혈통을 일부 가진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오늘(1일) 오후 10시에 방송될 JTBC '1호가 될 순 없어'에는 지난 방송에 이어 팽현숙, 최양락 가족의 결혼기념일 여행 2탄이 공개된다.
팽현숙의 로망을 가득 담은 캠핑 여행 중 해가 저물자 최양락과 자녀들은 현숙을 쉬게 한 뒤 식사 준비에 나선다. 최양락은 서툰 두 자녀에게 거들먹거리며 훈수를 두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입만 산 캠핑 고수의 면모로 웃음을 유발한다.
최양락의 훈수에 지친 딸 하나는 잔소리 차단을 위해 아빠에게 맥주를 권하고, 기분이 좋아진 최양락은 팽현숙 몰래 연달아 세 캔이나 마신다. 결국 최양락은 식사 시간에 별안간 뒤로 넘어져 팽현숙에게 취한 걸 들키고 만다. 이에 분노한 팽현숙은 "이 인간아! 이렇게 취해서 무슨 32주년 결혼기념일이냐! 아빠 빼고 해"라며 폭발한다.
팽현숙, 최양락 부부는 서툴지만 부모님을 위해 정성스러운 여행을 준비한 하나와 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네 사람은 처음으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터놓으며 진심어린 눈물을 보인다.
31일(현지시각) 유족이 사망사실을 발표한 영화배우 숀 코너리(90)가 지난 1992년 3월4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기자회견할 당시의 모습. AP 연합뉴스
영화 007> 시리즈에서 1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영국 배우 숀 코너리가 별세했다고 31일(현지시각) 유족들이 밝혔다. 향년 90. 그의 아들 제이슨은 그가 카리브해 섬 바하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이 전했다. 정확한 사망 일시와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숀 코너리는 193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으며 우유 배달과 벽돌공 등 여러 직업을 거쳐 20대에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 제작된 007> 시리즈 첫 작품인 007 살인번호>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007> 시리즈 가운데 7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중년 이후에도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2006년 공식 은퇴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씨네21] 더보기 ☞ 영원한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를 보내며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305
次世代ゲーム機「Xbox Series X」はパワフルかつ静かで、後方互換性の高さが印象に残る:発売前レヴュー - WIRED.jp
ゲーム機の世代交代が始まろうとしている。いまのところ先頭を走っているのはマイクロソフトだ。「Xbox」の第4世代となる「Xbox Series X」と「Xbox Series S」は11月10日に全世界で発売される予定で、ソニーの「プレイステーション 5(PlayStation 5、PS5)」より2〜9日間(地域によって異なる)ほど早く消費者の手に届くことになる。
ただし、今回はさまざまな意味でこれまでとは様相が異なる。第3世代の「Xbox One」の4年後に発売された最上位機種「Xbox One X」はスペックが大きく変わっており、今回の世代交代も「Xbox 360」からXbox Oneへの刷新に近いような印象を受ける。
その後は、「薔薇の名前」「インディ・ジョーンズ/最後の聖戦」「レッド・オクトーバーを追え!」「ロビン・フッド」「ザ・ロック」、日本企業のアメリカ進出をテーマにした「ライジング・サン」などに出演。2000年には、イギリス女王エリザベス2世からナイトの称号を授与された。人気のほどは変わらないにもかかわらず、「リーグ・オブ・レジェンド/時空を超えた戦い」をもって、72歳にして俳優業を引退。ただし、9年後に、アニメ映画「Guardian of the Highlands」(日本未公開)で声の出演をしている。
스코틀랜드 출신…007·더록 등으로 국내서도 인기
아카데미·골든글러브 등 다수 수상…영국 기사작위도 받아
2003년 11월 파나마시티 대통령궁에서 촬영한 숀 코너리의 생전 모습. AFP 연합뉴스
첩보 영화 시리즈 '007'에서 1대 제임스 본드 역할을 연기한 영국의 원로 영화 배우 숀 코너리가 31일(현지시간)사망했다. 향년 90세. BBC 방송, 스카이 뉴스는 이날 그의 가족을 인용해 코너리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다. 1930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파운틴브리지 지역에서 태어난 코너리는 지난 8월 90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1962년 제작된 007 시리즈 첫 작품인 '007 살인번호'(원제 Dr. No)에서 최초의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다. 코너리는 007 시리즈 가운데 7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섹시한 남성'이라는 역할 모델을 할리우드 영화계에 만들었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역대 007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너리는 007 시리즈 이외에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년), '장미의 이름'(1986),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2006년 공식 은퇴했다. 그는 수십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과 2개의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상, 3개의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언터처블'에서 연기한 아일랜드 출신 경찰 역할로 198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받았다. 그는 2000년 스코틀랜드 홀리루드궁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다닌 것과 달리 코너리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가톨릭 출신 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신교를 믿는 청소부였다. 코너리 부친의 가족은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건너왔다. 코너리는 13세에 학교를 그만뒀고, 우유 배달과 벽돌공 등을 하다가 해군에 입대했다. 위궤양으로 3년만에 군을 나온 그는 다시 트럭 운전사와 안전요원은 물론 에든버러 미술학교에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축구에 재능이 있었던 코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연기를 택했다. 1954년 단역으로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1957년 BBC의 '블러드 머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그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든 것은 역시 '007 시리즈'였다. 여러 명의 배우가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제작자의 부인이 코너리의 매력이 섹시한 본드 역할과 어울린다고 추천했고, 결국 배역을 따냈다. 원작자인 플레밍은 처음에는 코너리가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첫 작품을 본 뒤로는 이같은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그의 나중 소설에서 본드가 스코틀랜드 혈통을 일부 가진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실제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해왔다.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그는 독립을 위해 표를 던져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코너리는 당시 일간지 더 선에 기고한 글에서 "스코틀랜드와 예술을 평생 사랑한 사람으로서 분리독립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스페인, 바하마, 뉴욕에서 지냈다. 그는 2003년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005년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백치들같은 영화인들에 신물이 난다"며 "내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마피아와 같은 제의가 아니라면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인디아나 존스4',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작품의 출연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방송되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 128회에서는 이승윤과 독사 PD의 달콤살벌한 브로맨스가 꿀잼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날 이승윤은 "모든 사건의 중심엔 독사 PD가 있었다"라면서 장수말벌에 쏘여 응급실을 찾은 사연을 털어놓는다.
‘전참시’ 이승윤과 독사PD가 티카타카를 펼친다.사진=MBC 제공 이어 이승윤은 응급실에서 눈을 뜨자마자 독사 PD에게 들은 공포의 한마디를 폭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데.
이에 독사 PD는 이승윤을 향한 숨겨둔 찐 마음을 고백해 훈훈함을 안긴다고 한다.
하지만 따뜻한 분위기도 잠시, 이승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9년을 자연에서 동고동락한 남다른 케미스트리를 과시한다고.
특히 이승윤은 이날 역시 독사 PD의 한마디에 분노 폭발했다고 하는데. 녹화 도중 이승윤이 "여길 들어가라고?!"라며 당황한 것. 하지만 독사 PD는 이승윤의 분노 샤우팅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폭소를 자아낸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승윤이 2시간 산행 끝에 "허무하다"라며 주저앉은 사연과, 매니저의 깜짝 야생 패키지가 안방에 흥미진진한 빅재미를 안길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 128회는 31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된다.mkculture@mkculture.com
삼성을 세계 반도체 2위로 끌어올려 준 D램
PC 시대 예견, 수율과 가격에 초점 맞춰
올해 2분기 시장 점유율 43.5%, 압도적 1위
中 기업 도전, 또 다른 치킨 게임 불러올 수도
삼성전자 사옥.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컴퓨터의 D램(DRAM)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부품에 비해 비교적 저렴해 쉽게 구할 수 있고, 본체 내 슬롯에 끼우기만 하면 즉각적인 성능 향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재 D램를 가장 많이 만들고, 또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은 삼성전자입니다. 2019년 기준 인텔에 이어 세계 2위의 매출을 기록한 삼성의 수익 대부분이 이 D램에서 나옵니다.
지금이야 D램이 만만한 부품으로 취급 받지만, 사실 과거에는 고급 부품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컴퓨터’라는 단어는 메인프레임을 의미했습니다. 메인프레임은 거대한 본체가 특징인 컴퓨터로, 주로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때 쓰입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대세가 된 PC와 비교하면 매우 비쌉니다.
당시 D램은 메인프레임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이었습니다. 그만큼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당시 D램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다보니 이 시기 D램을 구매하는 업체들은 부품의 성능과 수명을 중시했습니다.
미국 기업 'IBM'이 개발한 메인프레임. 메인프레임은 기업, 관공서 등에서 사용하는 대형 컴퓨터를 뜻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이 때문에 높은 기술력과 신뢰성을 갖췄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업계를 독식했습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엘피다, 도시바, NEC 등 일본 기업들은 D램 시장의 80%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컴퓨터의 크기가 줄어들고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PC가 개발됩니다. 또 PC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를 이루는 부품의 요구사항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삼성전자가 신규업체로써 반도체 업계에 진입했습니다.
◆스택이냐 트렌치냐
80년대에 이미 세계 D램업계 1위를 달성한 일본 업체들은 여전히 고성능과 극한기술을 고집했습니다. 반면 삼성 등 한국 업체들은 수율과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당시 D램 설계의 가장 큰 화두는 ‘스택(stack)’이냐 ‘트렌치(trench)’냐의 문제였습니다. 컴퓨터가 작아지면서 D램은 크기를 줄이는 동시에 회로는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이를 위해 회로를 위로 쌓아가는 방식인 스택과 아래로 파고드는 형식인 트렌치로 나뉜 것이지요. 이때 삼성은 스택을 채택했고, 도시바를 위시한 일본 업체들은 트렌치를 사용했습니다.
트렌치는 공정이 복잡한 대신 성능 면에서 뛰어났지만, 스택은 생산하기 쉽고 불량을 확인하기 용이했습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반도체 연구원들로부터 스택과 트렌치의 장단점에 대해 두루 들은 뒤 “더 단순하다”는 이유로 스택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삼성과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운명을 결정 지었습니다.
세계 최초 64M D램(왼쪽)과 국내 최초 64K D램. / 사진=연합뉴스
스택 공법을 채용한 삼성은 D램을 더 저렴하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저가 공세를 펼쳤습니다. 이후 삼성의 생산력 때문에 ‘출혈 경쟁’에 휘말린 일본 업체들은 하나 둘 무너지게 됩니다.
◆반도체 치킨 게임의 도래
삼성으로 인해 D램 시장의 룰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성능과 수명이 아닌 수율과 가격이 시장의 승자를 결정짓게 된 겁니다.
살아남은 D램 업체들은 라이벌 기업의 시장 지분을 몰아내기 위해 최대한 생산량을 늘려 저가공세를 펼쳤고, 이로 인해 이른바 ‘반도체 치킨게임’이 펼쳐지게 됩니다.
치킨게임은 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을 때, 둘 중 하나가 완전히 망하거나 포기할 때까지 경쟁을 하는 겁니다.
삼성이 개발한 D램. / 사진=한국공학한림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D램 제조 기업들은 D램의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춰, D램 1개를 팔 때마다 오히려 회사가 손해를 보는 저가 경쟁을 하게 됩니다. 적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회사는 결국 D램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고, 남은 지분을 승자가 모조리 가져가는 잔인한 게임입니다.
반도체 치킨 게임으로 인해 지난 2009년 독일 D램 반도체 업체 ‘키몬다’가 파산했고, 2012년에는 과거 일본 최대의 D램 기업이었던 엘피다가 5분기 연속 적자를 낸 끝에 쓰러졌습니다.
긴 치킨 게임 끝에, 현재 D램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미국 마이크론 사 등 이른바 ‘빅3’이 장악한 상황입니다. 이 중에서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기준 43.5%의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독보적 1위입니다.
◆역사는 반복될까
현재 D램 시장은 빅3 업체들이 나눠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중국 IT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직접 반도체 생산에 나섰습니다. 일부 기업은 본격적으로 D램 양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은 중국 기업들에 비해 5년 이상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과거 치킨 게임처럼 출혈 경쟁에 나선다면,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판도가 또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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