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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ly 29, 2020

친환경 생태주의 도시 포틀랜드는 어떻게 반 트럼프 투쟁의 전위가 됐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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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연방법원 건물 앞에서 28일(현직시간) 여성 시위자들이 팔짱을 끼고 ‘인간 장벽’을 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연방법원 건물 앞에서 28일(현직시간) 여성 시위자들이 팔짱을 끼고 ‘인간 장벽’을 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지난 5월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망한 이후 시작된 항의 시위가 두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견한 연방요원들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연일 미디어의 주목을 끌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 100명의 연방요원을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에는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 잡지 ‘킨포크’가 탄생한 곳으로 유명한 포틀랜드는 어떻게 섬광 수류탄과 최루탄, 물병과 폭죽이 난무하는 ‘반 트럼프’ 투쟁의 전위가 됐을까.

포틀랜드는 ‘힙스터의 성지’이자 ‘리버럴(진보)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했던 지역 중 하나이고, 극좌와 극우 집회가 공존하는 도시다.

인구 60만명으로 오리건주 최대 도시인 포틀랜드는 백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흑인 인구는 6%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오리건주는 법으로 흑인들의 존재를 금지했던 주다. 1844년 만들어진 ‘오리건 흑인 배제법’에 따르면, 오리건주 내 흑인은 6개월마다 20~39대의 채찍질을 당해야 했다. 1849~1857년에는 흑인들이 오리건주 영토 내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다. 1920년대 초에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 출신들이 오리건주 의회를 지배했다. 당시 포틀랜드에서는 경찰서장이 하얀 두건을 쓴 KKK 회원과 나란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도박과 불법 나이트클럽 등 범죄와 부패로 악명이 높았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1960년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히피 문화가 유입되면서다. 이후 미국 원주민 권리 운동, 환경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 각종 사회운동단체들이 포틀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1990년 이후 인텔 등을 비롯한 하이테크 기업들이 자리잡아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다. 미국 청년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중 하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진보의 천국이자 공화당원과 비닐봉지가 거의 사라진 곳”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백인 비중이 높은 포틀랜드에는 극우 단체들도 몰렸다. 1980년대에는 스킨헤드와 네오나치 그룹이 나타났다. 이에 대항해 2007년 무렵 로즈시티 안티파 그룹이 탄생했다. ‘로즈시티’는 포틀랜드의 별칭이고 ‘안티파’는 안티 파시즘의 줄임말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포틀랜드는 극좌와 극우가 충돌하는 무대가 됐다. 지난해 8월에는 ‘프라우드 보이스’, ‘아메리칸 가드’, ‘스리 퍼센터스’ 등 극우 단체들이 포틀랜드에 몰려와 안티파와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포틀랜드에 연방요원을 투입한 것은 폭력을 부추기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지 더애틀란틱은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2주전 (자신과 극우에 대한 반감이 큰 포틀랜드에 연방요원을 투입해) 갈등을 일으키기로 선택했다”면서 “(연방요원과 시위대의 충돌은) 재난과도 같은 코로나19 대응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낼 기회를 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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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9, 2020 at 05:1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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