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영국 총선이 있었다. 선거 직전까지는 상식적으로 전망해보면 보수당이 이겨야 하는 선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치러진 선거였고, 보수당의 간판스타는 영국의 전시(戰時) 내각을 이끈 처칠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아직 항복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 전쟁은 히틀러의 자살(1945년 4월 30일)과 독일의 항복(1945년 5월 7일)으로 연합국 측 승리로 종식된 상태였다. 미국의 참전이 가장 큰 힘이었고 뒤늦게 독일과 맞서게 된 소련의 역할도 있었지만, 서유럽으로 좁혀보면 무엇보다도 영국의 승리였다. 히틀러의 독일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할 때 타협을 거절하고 맞서는 길을 택한 영국이 아니었으면 유럽의 운명은 달라졌을 터였다. 그런 만큼 영국을 이끈 처칠의 정치적 존재감은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전쟁 끝 무렵인 1945년 2월 여론조사에서 처칠 내각의 지지율은 83%에 달했다. 다가오는 7월의 총선, 보수당의 승리는 당연하다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보수당의 패배, 그것도 전례 없는 참패였다.
득표율 노동당 47.7%, 보수당 36.2%로 11.5% 차이의 패배였다. 의석수로는 더 크게 벌어졌다. 노동당 393석, 보수당 197석으로 노동당이 보수당의 2배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했다. 자국에 승전(勝戰)을 안겼음에도 역대급 패배를 당한 것이다. 노동당의 20년 장기집권 전망까지 대두되고 보수당 인사들 사이에는 당혹을 넘어 패닉 기류가 흘렀다.
경계는 희석되고 유혹은 강해지다
한편에선 그 같은 결과는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노동당이 주창한 개혁 프로그램이 이미 영국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제기한 전면적 사회보장제도, 바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기치로 상징되는 복지국가 노선이었다.
그렇게 볼 만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는 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쳤다. 그러는 동안 영국 국민들의 정치의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회주의의 소련도 연합국의 일원, 즉 영국의 동맹이었다. 1945년 7월 무렵은 아직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 만큼 사회주의적 경향의 정책이라고 거부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회주의는 경계되면서도 늘 유혹으로 존재했다. 그런데 이제 경계는 희석되고 유혹이 더 강해져 있었다. 사회주의적 정책의 파산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혁명을 막기 위해서도 개혁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있었다. 변화라면 그게 변화였다.
영국 보수당은 1945년 총선 패배 뒤 그런 변화에 적응을 시도했다. 1947년 노동당 정책 기조의 기본 틀을 받아들인 〈산업헌장〉을 채택했다. 그리고 1951년 다시 정권을 탈환했으며, 처칠은 총리에 재임명되었다. 하지만 처칠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당시 〈산업헌장〉 초안은 산업에 대한 적극적 국가 개입, 주요 산업 국유화, 복지국가 노선의 전면적 수용 등을 담고 있었다. 이를 받아든 처칠은 “이제 우리 당에도 사회주의자가 있구나” 하고 탄식을 했다. 총선에서 참패를 하고도 그 다음 해인 1946년 ‘철의 장막’을 운운하며 소련에 대한 경계를 촉구한 처칠다운 까탈이라 해야 할까? 아니었다.
보수당은 1945년 참패를 딛고 1951년 정권을 탈환한 뒤 1964년까지 13년간 집권을 이어가기는 했다. 하지만 정책 노선상으로 보면 노동당과 별 차이가 없었다. 어떤 점에선 노동당 20년 집권 전망이 노선 차원에선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대가는 컸다. ‘영국병(英國病)’이 자란 것이다.
끊임없이 좌클릭했지만…
지난 4월 15일 한국의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을 필두로 한 보수진영은 유례없는 참패(慘敗)를 기록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현 집권세력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국정파탄과 난행(亂行)에 비추어보면 예상을 넘어선 결과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1945년 총선에서 충격적 패배를 당한 영국 보수당의 경우와도 비견되는 결과였다. 물론 역사적 경과와 구체적 과정은 다르다. 하지만 업적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거절을 맛보아야 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현재와 같은 성장 발전을 이룩하기까지 한국의 보수 본류 세력의 ‘피와 땀과 눈물’의 기록은 부정될 수 없는 역사적 발자취다. 수많은 정치적 굴곡에도 불구하고 그 족적은 늘 기본적 호소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한국의 보수진영은 그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절당했다. 1945년 영국 보수당이 당한 것과 같은, 어떤 점에선 그 이상 가는 좌절일 수도 있다.
1945년 영국의 경우처럼 역시 시대변화의 탓으로 보아야 할까? 그런 측면도 있기는 하다. 건설을 이끌었던 위대한 세대는 퇴장하고 있으며 이른바 1987년 민주화를 앞세운 386세대가 586으로 주력(主力) 연령대가 되었다. 그들의 좌(左)편향적 세례에 사로잡혀간 이후 세대들의 대거 등장으로 세대 구성에 변화가 왔다. 그러니 1945년의 영국 보수당이 그랬듯, 작금의 한국 보수진영의 패배도 그런 변화를 포착하고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좀 틀린 얘기다. 적어도 미래통합당이라는 당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이 당은 오히려 이른바 시대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지나치다 할 만큼 발버둥을 쳤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총선에 앞서 중도층을 잡겠다며 자유한국당이라는 그 기왕의 정체성(正體性)을 담은 당명조차 버리고 어떻든 안간힘을 다해 통합이라는 것을 했다. 정책 노선도 이미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왼편’으로의 이동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영국이 그랬듯 그런 식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나라 전체가 대가(代價)를 치르게 만든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은 중도통합과 좌클릭에 더 몰두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결국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는 미래통합당의 실패가 변화하지 못한 정책 노선 탓이 아님을 뜻한다.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養子 시스템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정당의 지도자들은 외부에서 영입된 養子들이었다.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
문제는 바로 그 타성이다. 비대위를 반복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바로잡지 못하는 타성이다. 때마다 당 개혁을 한다고는 했다. 하지만 결과가 증명하듯 당을 강하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 자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이 반복해온 중요한 습관의 하나가 이른바 영입(迎入)이다. 우선 대통령 후보부터가 그랬다. 사실상 외부 영입이 아닌 경우가 없었다. 3당 합당으로 후보를 거머쥔 김영삼부터 이후의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등 따지자면 모두가 그랬다. 당내에서 성장하여 경쟁을 거쳐 후보가 된 경우가 없었다. 양자(養子) 시스템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만 그랬던 게 아니다. 당대표, 비대위원장 등은 물론 각종 선거의 공직 후보 공천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선거를 앞둔 때면 늘 영입 이벤트가 벌어지고 공천관리위원회는 그런 인물을 꽂아넣는 걸 당연시했다. 그게 잘하는 거라고 여겼다.
필요하면 양자도 들여야 한다. 순혈성(純血性)만 강조하는 것은 근대적인 자세가 아니다. 하지만 양자만으로 이어가는 것은 말하자면 스스로 생식(生殖)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생식 능력은 생식 주체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 스스로 생식할 의지를 포기하면 그를 위해 체질을 강화할 동기도 잃게 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습관이 된 양자 시스템은 당 시스템 자체의 성장과 강화를 소홀히 하게 만든다.
영입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모든 좋은 인재들이 직업적 당인(黨人)일 순 없다. 좋은 인재들을 발굴・발탁하는 것은 중요한 정치적 경쟁이다. 하지만 영입에만 의존하는 건 평소의 건강은 도외시하다 보약(補藥)으로 갑자기 효과를 보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건강관리는 않다가 보약을 들이켜고, 그러다 양자를 들이고, 그렇게 간신히 이어가다 다시 때가 되면 또 그 행태를 되풀이하고, 이런 식으로는 번성은커녕 명맥(命脈)의 연속도 기약할 수 없다. 그것은 사실상 죽어가는 과정일 뿐이며, 한계가 오면 맥도 끊기게 된다. 그럴듯한 양자 영입도 그나마 위세가 어느 정도라도 유지돼야 가능하다. 외면받기 시작하면 들어올 양자도 없게 된다. 땜빵을 거듭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그들만의 리그
정치 행태상의 타성만 문제가 아니다. 주된 정치적 구성인자(因子) 자체가 구태의연한 타성의 집합이 돼 있다.
우선 압도적으로 전직 관료 출신들이다. 인재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 승진문화다. 관료는 승진하지만 정치인은 선출된다. 승진은 인사고과에 따르지만 선출은 설득에 의해 이뤄진다. 정치적 설득은 상사(上司)를 모시는 것과 다르다. 이끌 수 있어야 설득할 수 있다. 설득한 다음에 이끄는 게 아니다. 반대다. 대중에 대한 정치적 설득에는 논리 이상의 감성이 있어야 한다. 바로 지도적 면모다.
대중은 “여러분 해주실 거지요?”라고 부탁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제가 앞장설 테니 따라와주십시오!”라고 해야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대중은 의지에 반응하지, 부탁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 점을 모르니 대중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습성상의 약점만 문제가 아니다. ‘전관예우당(前官禮遇黨)’이라는 인상이 이미 문제다. 관료 출신들이 당으로 옮겨와 또 한 번 승진하듯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으로 비친다. 직업 관료로 수고해온 분들이 또다시 선출직 공직자로 수고해준다고 여기지 않는다. 누려왔던 자들이 한 번 더 누리려는 모습으로 본다.
관료 출신이 아닌 이들도 있다. 율사(律師)들이다. 그런데 대중 입장에선 이들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 외의 이들도 대개는 유력한 배경, 집안, 학위, 고급스러운 경력 등을 앞세우는 인물들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전반적인 대중적 인상의 차원에서 보면 이 당은 결국에는 무언가를 계속 누리려는 사람들의 집합체다.
‘되고자 하는 사람’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지위 획득에 목을 거는 사람’과 ‘목표로 한 일을 이룩하려 진력(盡力)하는 사람’의 차이다.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겠다” 운운은 정치판에선 관용어구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지위를 좇는 게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일에 진력하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러나 지금 미래통합당의 면면에서 대중은 그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중 입장에서 이 당의 모습은 지위 획득에 몰두하고 그 지위를 계속 누리려 하는 사람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성채’다. 조장된 것이든 어떻든 이 당의 구성 면면 자체가 그런 인상을 주고 있다.
스스로 자부심을 버리니 더 무시당하는 것
4·15 총선 전날인 4월 14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한 후 큰절을 했다. 사진=조선DB |
하지만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정책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성과 행태(行態)가 보여주는 인상이 더 결정적이다. 전관, 기득권, ‘꼰대’ 프레임은 정책 탓이 아니다. 중도를 말하고 정책을 좌클릭을 한다 해서 그 프레임을 깨뜨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구태의연한 구성과 행태로 인한 인상을 바꾸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런 면모의 일신 없이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버린 모습을 보이면 대중은 더욱 무시하게 마련이다.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 상대를 따라만 가면 ‘짝퉁’ 취급을 받는다.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진품(眞品)이 아닌 짝퉁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없다. 대중의 입맛에만 맞춘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당장에 급급한 대중영합정책이어선 안 된다. 결국 좋은 상품이어야 한다. 물론 상품이 본질적으로 좋다고 다는 아니다. 잘 파는 마케팅 능력을 키워야 한다. 대중 전달・설득의 언어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보인 면모는 이런 진단 자체를 허무하게 한다. 미래통합당은 선거전 막바지에 일제히 땅바닥에 절을 하며 읊조렸다. 종로 후보로 나선 황교안 대표부터 땅바닥에 코를 박는 절을 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결과는 참패였다.
표를 구걸하는 정당
코로나19(우한폐렴) 사태와 총선 중에 묻혀 주목도가 떨어졌지만 ‘라임 사태’라는 사기사건은 그야말로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면 곧잘 ‘전대미문’ ‘희대의’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사기사건은 사실 늘 반복된다.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사기꾼에게 돈을 맡기기 일쑤다. 그 덕분에 사기꾼이 한탕 해먹는 일이 반복해 발생한다. 하지만 거지가 동냥으로 부를 일군 경우는 없다.
문재인 정권 세력은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사기를 쳐왔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와 미래통합당은 결국 표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지자면 시종 그런 식이었다. 결기를 볼 수 없었다. 우왕좌왕 허둥지둥의 연속이었다. 통합, 공천, 선대위 구성이 모두 그랬다. 내용만이 아니라 행태 자체가 엉망이었다. 그러다 결국 선거 막바지에는 동냥하는 모습을 보였다. 표를 구걸한다고 찍지 않을 표를 새삼 찍어주지 않는다. 이건 설득은커녕 정치라고 할 수도 없다.
영국 보수당은 1945년 7월 총선 패배 이후 정책에서 큰 변신을 했다. 하지만 다시 정권을 탈환한 것은 정책 노선의 변화만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 보수당의 재기(再起) 과정에는 당 조직상 일대 변신과 강화의 노력이 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대영제국 전성기를 이끈 디즈레일리가 보수당의 면모를 한 차례 일신했다. 그는 보수당을 귀족과 지주만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성장한 자본가, 중산층, 전문직은 물론 노동자도 끌어안는 국민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1945년 패배 후 영국 보수당은 다시 한 번 그 같은 당 혁신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당원 확대 모집에 나섰다. 특히 청년당원 확보에 적극 나섰다. 지금 한국도 그렇지만 당시 영국의 젊은 층들도 좌경화 경향이 강했다. 영국 보수당은 그 경향에 그저 코드를 맞추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의 기치를 정면으로 내걸고 적극적으로 조직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청년보수(Young Conservative)운동을 일으켜 대대적으로 지역조직을 만들고 청년 보수당원들을 확보해나간 것이다.
이와 함께 당의 정치적 발탁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지금의 한국도 그렇지만 당시 영국도 특히 보수당은 재력과 배경을 가진 유력자들이 정치적으로 행세하고 발탁되기 쉬웠다. 영국 보수당은 그 양상에 근본적 혁신을 가했다. 공직 후보자의 기부금액에 대폭 제한을 가해 돈의 위력으로 발탁되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 또 지구당 스스로가 운영 및 선거자금을 마련토록 했다. 그러자 근본적 변화가 나타났다. 지역 유지나 유력자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당이 된 것이다.
이것은 청년층의 입장에선 특히 고무적인 변화였다. 이제 물려받은 돈과 배경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줄 수만 있으면 됐다. 영국 보수당은 정치적 발탁 시스템에 실력과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았다. 마거릿 대처, 그리고 그 후임인 존 메이저 등 보수당 총리는 모두 중하류층 출신이다. 보수당의 시스템 개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영국 보수당이 1945년의 참패를 딛고 6년 뒤인 1951년 정권을 탈환해 이후 13년간 집권을 이어간 바탕에는 이 같은 강력한 조직적 혁신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보수당이 아무리 노동당의 정책을 적극 수용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조직적으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노력 없이 그저 경쟁 상대의 정책을 따라만 가서는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유권자 입장에서 비슷하다면 진품을 택하지 굳이 짝퉁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혈액형 맞지 않는 수혈 하면 사망
김미애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 사진=조선DB |
미래통합당의 선거대위 부위원장 중 한 명은 김대중을 찬양하고 문재인을 “짱 존경” 한다는 인물이었다.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극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인물이 ‘청년’이라는 명분으로 영입됐다. 전관당(前官黨)의 습성에 젖어 있다 나름 참신한 인물을 영입한다고 한 게 이런 식이었다.
노선도 그러더니 수혈도 잡탕이 된 것이다. 수혈할 때 중요한 것은 ‘젊고 늙고’ 이전에 혈액형이다.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절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혈액형은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미래통합당은 그런 수혈을 했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참패를 했지만 주목할 만한 의의를 갖는 당선자도 있었다. 특히 김미애 당선자의 경우가 그러하다. 방직공장 여공(女工) 출신으로 뒤늦게 야간 법대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됐다. 게다가 두 아이를 입양해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하다.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성공담 이상이다. 보통 사람의, 아니 그 이하의 바닥에서부터 치열한 노력으로 올라선 분투가 보여주는 감동이 있다.
보수정당, 신흥 특권집단에 맞서야
한국의 보수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권 세력은 이번 총선 승리의 결과로도 그렇지만 이미 기득권(旣得權) 세력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민주를 팔고 정의를 팔고 서민을 빙자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귀족이다. 민노총, 전교조 등은 귀족노조라는 말 그대로 이미 서민이 아닌 특권층이다.
보수정당은 앞으로 그 반대편에 서야 한다. 그들 신흥 특권 집단에 맞서 평범한 국민을 대변하고 조직하는 국민적 보수정당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의 일상적 평가와 보상 시스템에 일대 혁신을 기해야 한다. 국민적 당이 되기 위해선 지지층 확대와 당원 충원(充員)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 돈과 배경이 없어도, 아직은 경력이 부족해도 노력하고 싸우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평가받고 보상받을 수 있게 해야 사람이 모인다. 특히 청년층일수록 더 그렇다.
지금까지 한국의 보수정당은 위기가 오면 우선 정책 노선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지금 한국 보수정당에 필요한 것은 노선의 좌클릭이 아니라 시스템의 개혁이다. 당 자체에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평가받고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면 젊은 인재들의 충원은 물론이요, 당이 ‘다시 여는 성공시대’의 상징이 되는 국민적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야 이긴다. 기발함은 없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이 중요하다.⊙
June 10, 2020 at 02: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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