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해군 사령부 사살 취지 명령 하달
대위급 정장 확인 30분 뒤 실행 보고
文대통령, 사살 11시간 뒤 보고 받아
국방부 “사살 언급한 내용 없다” 부인
우리 군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망 당시 북한군의 내부 보고와 상부 지시 내용을 감청을 통해 실시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당시 감청 내용에는 북한군이 실종 공무원 이모씨를 사격할지 여부를 상부에 보고한 뒤 사살 지시를 받은 정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 25일 청와대로 보낸 전통문에서 이씨 사살과 관련해 “(경비)정장(대위급)의 결심 밑에 해상 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사격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군 당국이 감청을 통해 파악한 내용은 이와 배치되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군은 이씨가 서해 등산곶 인근에서 북한 선박에 발견된 시점인 22일 오후 3시30분 이전부터 북한군들의 교신 내용을 무선 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신 내용은 24일 국방위 비공개 현안질의 때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은 북한군이 이씨를 밧줄로 묶어 육지로 옮기려다 해상에서 놓친 뒤 2시간 만에 다시 찾은 정황으로 미뤄 구조작업으로 판단해 구출에 나서지 않고 대기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2일 오후 9시를 넘어 돌연 북한 해군사령부에서 “사살하라”는 취지의 명령이 하달됐고 대위급 정장이 이를 되물으며 상부에 재확인했다고 한다. 그런 뒤 9시30분쯤 현장에서 “사살했다”는 취지의 보고를 윗선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위 관계자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도대체 죽이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라는 뉘앙스의 말이 (교신을 통해) 오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도 이날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속정이 (이씨를) 분실했다가 다시 찾을 때는 어둑어둑했겠죠. 오후 6시 30분쯤 됐으니까”라며 “그때부터 한 2시간 정도 ‘그러면 어떻게 처리할까요’라는 식으로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상부에서) ‘사격을 해라’(는 지시가 내려와) 고속단정이 와서 사격을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 군은 22일 오후 3시30분부터 이씨 사살 보고가 올라가기까지 6시간여 동안 아무 대응 없이 감청 내용을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군은 이 같은 내용을 청와대 등과 즉시 공유했고 이 사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로 전달된 것은 이씨가 사살된 지 11시간 뒤인 23일 오전 8시30분쯤이었다. 당국은 “조각조각 모인 첩보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해명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방위에서 “북한이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이날 “당시 우리 군이 획득한 다양한 출처의 첩보내용에서 ‘사살’을 언급한 내용은 전혀 없다”며 “따라서 ‘사살’이라는 내용으로 유관기관과 즉시 공유했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청와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정확한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주변국들과의 정보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北 ‘정체불명 침입자’라더니… 이름·고향까지 소상히 파악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해경이 잠정 결론지었다.
해양경찰청은 29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군 당국으로부터 확인한 이씨의 월북 의사 표현 정황 등 첩보 자료와 실종 당시 표류 예측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씨를 ‘정체불명의 침입자’로 판단해 사격했다는 북한 당국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진상 규명을 위한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해경의 이씨 ‘자진 월북’ 시도 판단 배경은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어제 수사관들이 국방부를 방문해 확인했다”며 “실종자는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한 상태로 (1m 길이의)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이름, 나이, 고향, 키 등 신상 정보를 북측이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가 월북 의사를 밝힌 정황 등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해경은 이씨가 지난 21일 실종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과 소연평도 인근 해상의 조류와 조석 등을 분석한 ‘표류 예측’ 결과도 실족이나 극단적 선택 가능성보다 월북 정황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단순히 표류됐다면 소연평도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남서쪽으로 떠내려갔을 거란 얘기다. 그러나 이씨는 소연평도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38㎞ 떨어진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피격됐다.
윤 국장은 “국립해양조사원 등 4개 기관의 표류 예측 결과와 실종자가 실제 발견된 위치는 상당한 거리 차이가 있었다”며 “(이씨가) 인위적인 노력 없이 실제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실종 전 탔던 어업지도선의 현장조사와 동료 진술 등을 통해 선미 갑판에 남겨진 슬리퍼는 이씨의 것으로 확인됐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유전자 감식을 하고 있다.
해경은 이씨가 도박 빚 2억6800만원을 포함해 3억3000만원의 채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윤 국장은 “실종자는 연평도 주변 해역을 잘 알고 있었다”며 “지금까지 수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실종자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의문점 여전
해경 발표가 사실이라면, 북측은 이씨가 비무장 상태로 월북을 시도한 민간인임을 알았으면서도 무참히 총살한 셈이 돼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누가 왜 사살 지시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북한이 지난 25일 통일전선부 명의 통지문에서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이씨를 ‘불법 침입자’로 규정한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또 해경 발표와 달리 이씨의 구명조끼 착용 여부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이씨가 ‘부유물’을 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격 후 10여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면 피격된 후에도 일정 시간 해상에 떠 있어야 하는 게 상식적이다.
해경이 밝히지 않아 이씨 시신 훼손 여부는 안갯속이다. 군은 지난 24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북측은 다음 날 “사격 후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고, 부유물만 태웠다”고 반박했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논란만 더 키울 것으로 보여 남북 공동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이씨의 형 래진(유가족 대표)씨는 이날 외신기자 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해경이 현장조사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월북을 단언하고 있다”며 “동생을 실종이 아닌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지만, (월북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두 번이나 존재했는데 정부는 뭐 했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회견에서 “동생의 시신을 간절히 찾고 싶다”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동생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장혜진·최형창·박병진 기자, 인천=오상도·강승훈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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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30, 2020 at 07: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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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처리할까요” “사격해라”… 軍, 손놓고 북한 교신 듣고만 있었다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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