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오피스 차트는 보통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 리들리 스콧과 같은 거장들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가 차지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6월 10일 박스 오피스 순위에 한 영화관에서 단 2명 만이 관람한 영화가 올랐다.
원격 화상 채팅 프로그램 '줌'(Zoom)으로 촬영된 29분 길이의 호러 영화 '구독취소'(Unsubscribe)가 이날 무려 2만5000달러가 넘는 티켓 판매액을 기록한 것이다.
영화의 예산은 무려 '0원'이었다. 어떻게 예산이 안든 영화가 박스 오피스 순위에 오른 걸까?
'구독취소'
영화 '구독취소'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신의 배우이자 유튜버인 에릭 타바크와 뉴욕시 출신의 영화감독 크리스천 닐손이 협업해 만들었다.
이 둘은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화계가 전면 중지된 틈에 기회를 잡기로 했다.
큰 영화가 발표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만든 영화가 순위에 오를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미국 바이럴 매체 버즈피드에서 일하기도 했던 타바크는 BBC에 "박스 오피스 수치를 봤는데 말이 안 되더라"며 "판매액이 9000달러, 1만5000달러인 영화가 올라와있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안 나오고 있으니까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타바크와 닐손은 이후 '포월링'(four-walling)이라는 기법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포월링은 배급사가 영화관을 빌려서 티켓을 다 사버리는 전략을 말한다.
타바크는 "티켓 비용을 영화관에 지급하고 영화로 버는 돈을 다시 가져가는 수법을 말하는데, 이런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바로 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타바크와 닐손은 이 방식으로 하루 만에 박스 오피스에 오를 만큼 큰 수익을 낸 것이다.
하루 만에 쓴 대본
영화는 완벽하게 '대충' 만들어졌다.
닐손이 하루 만에 대본을 썼고 타바크가 자신의 친구들을 불렀다.
줄거리는 다섯 유튜브들이 인터넷 '트롤'(인터넷에서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자극함으로써 고의적으로 다른 이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에게 쫓기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놀랍게도 타바크가 부른 친구들은 넷플릭스 시리즈, HBO 맥스 등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들로 꾸려져 연기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또 유명 유튜버 '더 트라이 가이즈'(The Try Guys)의 잭 콘펠드 등도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타바크는 "모두가 무언가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신나있었다"며 "격리 때문에 모두가 정말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이들은 재밌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했고 공짜로 출연해줬다"고 했다.
닐손은 단 몇 주 만에 5일간 줌만을 이용해 촬영된 장면들을 편집하고 영화를 완성해냈다.
그리고 뉴욕 웨스트햄튼 비치 독립 영화관을 빌려 첫선을 보였다.
타바크는 그런 점에서는 "조금의 비용이 나간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타바크와 닐손은 유일한 관객으로 영화관에 입장해 영화를 시청했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둘은 '매진'(sold out)이라고 적힌 영화관 앞에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매진은 자신들이 모두 사들인 티켓 때문에 된 것이었지만, 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타바크는 "팝콘을 들고 나타나 자리에 앉았고 영화가 시작됐다"며 "그렇게 텅 빈 영화관은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의 다른 관객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멋있는 경험이었다"며 "영화가 상영할 때마다 보고 또 봤다"고 말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에 자신의 영화를 올리는 것이다.
타바크는 "진짜 영화고 그만큼의 수익이 났다는 증거가 없다며 (IMDb가) 자꾸 거절을 해서 배우들 사진을 보냈는데도 전부 다 의심했다"면서 "언론이 저희 영화에 대해 다루기 시작하니까 결국은 승인해줬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이제 IMDb에서도 영화 순위 1위"라며 "이건 미친 거다. 6월 10일 기준 1위다"고 강조했다.
2위를 차지한 영화 '더 레치드'(The Wretched)는 99개 영화관에서 상영돼 약 2만200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영화 '구독취소'는 영상 플랫폼 비메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타바크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창의적으로 일을 해내는 방법은 찾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말이죠."
June 19, 2020 at 03:4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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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어떻게 ‘예산 0원’ 영화가 박스 오피스 순위에 올랐을까?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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